[미디어 통일] 북한 학생들의 교육과 진로 2014-12-16 / 00:07:08

안녕하세요. 이우영입니다.

북한에서 사춘기 학생들의 학교생활은 어떠할까요?
진로 결정은 한국과 어떻게 다를까요?
오늘은 교육과 진로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북한의 공교육은 원칙적으로 학교 교육과 진로가 긴밀히 연결되는 시스템입니다.
학생들이 선호하는 진로는 직업이나 활동 분야에 대한 전형적인 인식을 반영하는데요.
북한의 소학교는 한국의 초등학교에 해당합니다.
소학교는 2012년, 작년까지는 4년제였는데 지금은 5년제라고 합니다.
2000년대 소설인 <숲으로 간 사람>에서는 산촌의 소학교 학생들은 갓 부임한
예쁜 처녀 선생님과 산으로 들로 견학을 다닙니다.

이에 비해 같은 2000년대 소설인 <우정의 노래>에 나오는 평양 학생들은
각종 편의시설이 갖춰진 “아빠트 지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기도 하는데요.
중학생인 준혁이네 학급 38명 중 절반은 같은 “아빠트 지구” 내의
탁아소와 유치원을 함께 다닌 친구들입니다.
더군다나 북한은 입학할 때부터 졸업할 때까지 반과 담임교사가 바뀌지 않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학급생들의 친밀감이 대단하다고 합니다.

2002년이 배경인 <우정의 노래>에는 구체적인 학교 상황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고등중학교의 수업이 시간당 45분에 휴식시간 15분으로 되어 있고 수업이 끝나면
“교원들은 일제히 교원실에” 모여 교원들끼리 주로 학생들과
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한국의 교무실에 해당하는 교원실 풍경은 어떻게 묘사되어 있는지 보겠습니다.

량순일은 칠판 옆의 각 학급별 출석부들을 정히 꽂아놓은 자그마한 책장과
또 그 옆의 원탁 우에 놓여 있는 빨간 색의 커다란 물통에 눈길이 멎었다.
물통은 밑굽이 다 드러날 만큼 비여 있었다.
오전 아침시간과 오후 점심녘에 하루 두 번씩 직일교원들이 꼭꼭 물을 길어다 놓은
물통이였다.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교무실 풍경과 비교해서 어떤가요?
쉬는 시간에 교사들이 마실 물을 길어다 놓는 것은 퍽 이색적이네요.
이 교원실에서 교사들은 학생 문제나 행사 등에 관한 중요한 논의를 합니다.

북한소설에도 사춘기 문제아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소설 <우정의 노래>를 보겠습니다.
출판사 기자인 아버지와 구역 식료공장 회계원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장석은
어릴 땐 공부도 곧잘 하는 착한 아이였습니다.
하지만 중학시절부터 탈선을 합니다.
장석이 아파트 밑에서 또래들과 담배 피우는 것을 이웃집 여학생 옥주가 발견하는데요.
옥주가 그의 아버지에게 일러주었다가, 장석은 “볼이 터지게 귀뺨을” 얻어맞고
심한 욕설을 듣게 되죠.
장석은 “부모들의 속을 태우고 인민반의 미움을 받고 학교 선생님들의 애를 말리우면서
가까스로 중학교를 졸업합니다.

하지만 그는 상급학교는 물론 인민군대에도” 못 가게 됩니다.
학교 졸업 이후에 장석은 “어느 기계공장에 배치를 받았으나 공장에는 얼씬
얼굴도 내밀지 않고” 결국은 장석이 때문에 온 가족이 평양에서 쫓겨나고 맙니다.
북한에서는 특히나 평양에서는 가족 중 누군가의 행실이 불량하면 가족 모두가
그 지방에서 쫓겨난다고 합니다.
그리고 소설에서 묘사되었듯 상급학교나 인민군대에 갈 수 없게 되는 것이
문제아에 대한 사회적 처벌입니다.
이것은 상급학교 진학이나 인민군대 입대는 청소년들이 선망하는
사회적 진로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어쨌든 북한소설에서도 이렇게 문제아를 등장시키고
비교적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담배 피우고 폭력을 휘두르는 청소년, 그리고 탈선으로 이끄는
‘나쁜 친구들’이 있다는 것도 북한 도시 생활과 학교현장의
또 다른 이면을 추측할 수 있도록 합니다.

진로는 대개 이 중학 졸업 이후 결정됩니다.
소설에서 현심은 원래 의사가 되고 싶은 생각이 없었으나 어머니의 소원으로
의대에 진학한 경우입니다.
의사가 되고자 의학대학 통신생으로 공부하던 어머니가 아버지와 결혼하는 바람에
의사의 꿈을 접어야 했던 사연 때문이죠.
이처럼 북한의 진로 결정도 한국의 청소년들처럼 부모의 뜻을 반영해 정해지는
정서가 있는 것이 비슷한 것 같습니다.
현심이 의대에 간 것은 간호원이었던 어머니의 못 다 이룬 꿈에 대한
아쉬움 때문으로 설정되는데, 이런 경우는 한국에서도 아직 흔히 볼 수 있으니까요.

도시에서 넉넉히 살 형편이 되더라도 자식을 편하고 곱게 키우기 보다
일부러라도 험한 지역에서의 삶을 체험케 하는 것이 바람직한 가정교육으로
제시되기도 합니다.
평양에 살다가 탄광촌으로 가게 되자 심하게 방황하던 남철은 훗날 그 이사에
어머니의 깊은 뜻이 있었음을 깨닫고 친구에게 편지를 씁니다.

사실 우린 여기로 이사는 오지 않아두 됐었대.
그런 걸 우리 어머니가 결심을 했다는구나. 나 때문에...
사실 나야 외아들로서 고생이란 모르고 자라지 않았니.
그래서 어머니가 모질게 마음을 먹었는데 난 그것두 모르구...

2000년대 이후 소설들에서는 고생 모르고 자란 이들에게 일부러
열악한 환경을 제공해서라도 강하게 키워야 한다는 메시지가 교육적인 모범으로서
노골적으로 제시됩니다.
이렇게 자란 아이는 소설에서 자주 칭송받는 돌격대원이 될 자질을
기르게 되는 것이기도 하지요.
도시에서 편하게 지내며 말썽 피우다가 온 가족이 평양 밖으로 소개된 장석이네
경우와 대조적으로 말이지요.

북한 소설에서 아이들의 교육과 진로는 전반적으로 국가의 모범적인 노동력
생산을 목표로 한 계몽적인 메시지로 집중됩니다.
그러나 세부 내용에서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공교육 체계가 중심이 되어 이루어지며
최근 소설에서는 도농간의 교육 환경 차이, 청소년 탈선 문제, 입시 경쟁,
가정 교육에 대한 중요성 등에 대한 이슈가 포착됩니다.
미시적인 문제의식의 차원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기도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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