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관련해서 관심도 덜 받고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은 북한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과 이들의 일상입니다. 북한에는 김정은과 같은 최고지도자나 최룡해와 같은 실력자들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북한이란 나라를 구성하고 움직이는 수많은 보통사람들이 있다는 말입니다. 오늘은 이와 같은 북한사람들의 일상을 평양사람들을 중심으로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시청하기통일부는 올해가 한반도 통일시대를 개막하는 해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협업을 통한 통일준비′를 추진하기로 하였습니다.
시청하기오늘은 북한 소설에 등장하는 옷들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 옷에 대한 북한 사람들의 생각은 어떻게 변화되어 가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시청하기5000 년 역사 속에 전쟁도 있었고 여러 나라로 나뉜 과정도 있었지만 하나였던 한반도. 함께 한 역사에 비하면 찰나에 불과한 70년의 분단. 우리는 선택의 길 앞에 놓여 있습니다. 분단을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일 수도, 아니면 그 가능성을 믿고 사막에 씨앗을 심을 수도 있습니다. 분단이란 사막에 씨앗을 심는다는 건 어려운 일만은 아닙니다.
시청하기사회적 통합의 수준이 높은 유태민족에게 어머니가 유태인 여부를 결정하는 첫 번째 조건이었던 것은 문화의 전수에서 여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남북한 여성의 통합은 사회적 통합의 출발이 될 것입니다. 남북한 여성교류가 다른 분야의 교류보다 더욱 중요한 이유입니다. 이와 더불어 가사를 책임지면서도 출산과 양육에서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북한여성과 영유아에 대한 지원도 통일과정에서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시청하기앞으로 대북 산림복구 지원 사업을 통해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남북 간 그린데탕트가 실현되고, 한동안 중단되었던 남북 산림협력이 확대되어 하루빨리 건강하고 아름다운 금수강산 한반도로 복원되기를 기대합니다.
시청하기통일부는 2015.1.2(금) 17:00 서울청사 19층 대회의실에서 전 직원이 참석한 가운데, 통일부 직원 13명에 대한 우수 #8228;모범 포상과 류길재 통일부장관의 신년 인사말씀, 직원간 인사 교환이 있었다.
시청하기안녕하십니까? 북한대학원대학교 이우영입니다. 오늘은 북한의 젊은 세대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북한의 ‘요즘’ 세대는 기성세대와 얼마나 다른지 그리고 북한에도 세대간의 갈등이 있는지를 검토해보고, 북쪽의 ‘새세대’와 남쪽의 ‘신세대’와는 어떤 차이와 같은 점이 있는가를 알아볼 것입니다. 소크라테스가 ‘요즘 젊은이들은 문제’라고 말하기 이전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어떤 사회에서나 세대갈등은 반드시 존재하여왔습니다. 사람들은 나이를 먹으면서 변화하기 마련이고 성장하면서 겪는 사회상황도 시대별로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세대갈등에는 남북한이 다르지 않다는 말입니다. 북한에서는 공식적으로 세대를 구별하고 있는데 김일성이 속해있는 혁명 1세대로부터 시작합니다. 이들은 일제강점기의 항일투쟁을 주도한 집단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건국의 주역입니다. 이들을 잇는 혁명 2세대를 북한에서는 ‘조국전쟁 참전세대’라고 말하는데 한국전쟁의 주역인 사회집단입니다. 다음인 혁명 3세대는 ‘전후복구건설세대’입니다. 혁명 1세대는 건국뿐만 아니라 김일성 유일지배의 구축의 중심이었고 현재 북한 권력의 명실상부한 중심입니다. 한국전쟁을 휴전이 아니라 제국주의 미국에 대한 승전으로 선전하고 있는 북한에서 혁명 2세대의 상징적 의미가 큽니다. 또한 전쟁기간 대규모의 인명손실과 더불어 산업시설 대부분이 파괴될 정도의 피해를 입었던 북한에서 성공적인 전후복구 과정은 북한체제 유지의 토대가 되었기 때문에 혁명 3세대의 정치경제적으로 중요한 집단입니다. 혁명 1,2,3세대는 북한의 역사에서 일정한 역할을 수행하였고 혁명의 앞선 세대로 북한 내에서 본 받아야 할 대상으로 취급되고 있습니다. 이들 세대 다음이 혁명 4세대입니다. 이들은 1960년대 이후 태어나 성장한 집단으로 사회주의 공업화가 달성된 이후 그리고 상대적으로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안정되었던 시기에 성장한 사람들입니다. 국가체제가 완성되면서 이념교육과 정치적 선전을 충실하게 받았지만 하더라도 항일투쟁의 경험은 물론이고 전쟁의 고통이나 전후복구과정의 치열함을 직접경험하지 못하였기에 혁명 4세대 이후 세대는 앞선 세대와는 차이가 많습니다. 남한에서 소위 ‘486세대’가 앞선 세대와의 차이가 상대적으로 큰 것과 비슷한 맥락입니다. 민족이나 사회주의이념에 대한 헌신성 보다는 실용을 중시하는 산업화이후 세대의 특성을 갖고 있다는 뜻입니다. 혁명 4세대를 잇는 다음세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로 1980년대 이후 출생하여 1990대에 젊은 시절을 보낸 이들을 북한에서는 ‘새세대’라고 말합니다. 남한의 ‘신세대’에 대응하는 집단이라고 보면 됩니다. 더욱이 혁명 4세대가 정치사회적 격변을 경험하지 못하였지만 그래도 북한의 ‘좋은시절’에 대한 기억이 있는 반면 ‘새세대’의 경우는 이마저 없었기 때문에 체제에 대한 자긍심도 별로 크지 않습니다. 이러한 까닭에 북한에서도 이들을 불안하게 보는 시각이 있습니다. 실제로 북한은 청년조직인 사회주의청년동맹 을 1996년에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으로 이름을 바꾸고, 혁명선배들을 따라 배울 것을 강조하는 선전을 강화하는 동시에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행사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새세대’와 고난의 행군시기에 성장한 다음세대들의 체제에 대한 충실성은 약하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경제적 침체와 정치적 위기상황에서 성장하면서 체제에 대한 자부심은 높지 않은 반면 시장화 과정을 체험하고 외부문화를 경험하면서 이념보다는 실리를 중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외국에 나갈 수 있고, 수입이 보장되는 직업을 선호하고 같은 이유에서 진학과정에서 ‘외국어대학’이나 ‘상업대학’의 인기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한류를 비롯한 외부문화의 수용에도 적극적인 집단도 젊은 세대입니다. 기존세대와 젊은 세대간의 세대적 차이는 일상생활에도 쉽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모녀가 모두 교사였던 탈북자의 증언에 의하면 학교 현장에서도 김일성 중심의 정치교육을 강조하는 어머니 세대 교사와 새로운 기술이나 정보와 실용을 중시하는 딸 세대의 교사 간에 갈등이 많았다고 할 정도입니다. 시장화의 진전과 외부문화의 확산은 앞으로 세대갈등이 커지는 중요한 배경이 될 것입니다. 김정은 정권이 들어선 이후 북한은 젊은세대의 취향을 맞추려는 노력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젊은이의 필수품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어폰도 허용하고 있고, 과거 서구문화의 상징이라고 비판하였던 청바지도 허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 결과 최근 젊은 세대의 김정은에 대한 지지도 높아지고 있다는 증언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반 이념적이고 새로운 것에 민감한 세대적 특성과 북한사회의 변화 방향은 새로운 세대의 체제이탈을 지속적으로 자극할 가능성이 큽니다. 세대간 차이가 적지 않은 것은 북한만의 현상은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역사적 사건이 많고 체제변화가 극심한 사회에서는 세대갈등이 두드러지고 이 면에서 남한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사회주의 산업화를 지향한 북한과 자본주의 산업화를 이룩한 남한의 차이는 크지만, 일제강점기와 분단의 경험, 산업화의 경험, 그리고 1990년대에 ‘고난의 행군’과 ‘IMF사태’라는 체제위기의 경험은 남북한이 공유하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전쟁’으로 상징되는 이념과 갈등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새세대’와 ‘신세대’는 서로에 대한 적대감은 적은 반면 공감대를 가질 여지는 상대적으로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이야 말로 분단이 아닌 통일세대의 주역이 될 집단입니다. 따라서 남한의 ‘신세대’와 북한의 ‘새세대’간의 상호이해를 넓히는 교류를 포함한 다양한 정치적 사회적 노력이 더욱 중요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시청하기유진벨 재단 Stephen Linton입니다. 오늘은 통일 전에 해야 할 일들에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한국사람들은 통일에 대한 마음이 뜨겁습니다. 그리고 곳곳에서 통일에 대한 준비도 역시 바쁘게 움직입니다. 그러나 제 3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빈틈이 하나 보입니다. 대부분의 계획들은 통일이 이뤄진 다음에 무엇을 할까라는 플랜A 밖에 없습니다. 반면에 오늘 당장, 통일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나요? 그런 계획은 많이 세우지 않습니다. 왜 그런 계획이 안나오냐면 통일이 되면 모든 것이 이뤄진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어렵지만 그때는 왕래도 쉬워지고 여러 가지 쉬워진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맞는 이야기이지만, 반면 어떤 경우에는 그것이 맞지 않습니다. 가장 예를 들면 전염병입니다. 남북관계가 좋아지면서 사람들이 만나기 시작하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 그 만남이 건강해야 합니다. 서로 병을 주어선 안되죠. 할 일도 많은데 병까지 주게 되면 복잡해지죠. 그래서 전염병은 통일 전에, 남북관계가 좋아지기 전에, 일단 정리해 놓는 것이 훨씬 좋습니다. 한가지 예를 더 들어 보겠습니다. 그건 바로 결핵이죠. 결핵은 대부분 남한 사람들은 이미 해결된 병이라고 생각합니다. 옛날에는 있었지만, 지금은 잘 보이지 않고 옛날에 결핵 약 아주 잘 들었죠. 그 래서 약을 먹으면 깨끗이 병이 낫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 그것은 옛날 이야기 입니다. 지금 세계적으로 결핵이 다시 한번 큰 문제를 만들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결핵 균 자체가 달라지면서 이제 전에 잘 들었던 약들은 이제는 더 이상 듣지 않습니다. 그 반면 선진국에서는 결핵 문제가 그렇게 심각하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약도 안 나왔습니다. 그래서 날이 갈수록 일반결핵 약으로 치료가 안 되는 환자수가 급진적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환자를 치료 하려면 먹기 힘들고 부작용도 심하고 고통스러운 다제내성 약을 먹어야 합니다. 비록 50~60년 동안 세상은 좋아진 것이 많이 있었지만, 결핵차원에서는 인류가 후진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런 사실을 감안했을 때는 통일되기 전, 남북관계가 좋아지기 전, 사람들이 왕래하기 전에 북한에서 결핵퇴치, 특별히 변화된 다제내성 결핵 퇴치는 절실히 필요합니다. 결핵은 통일을 기다리지 못하는 병입니다. 그리고 한국인들이 통일 준비하면서 결핵을 소홀히 대하면 후유증이 정말 막대할 것입니다. 3가지 이유를 드리겠습니다. 첫째는 북한에서 1년에 10만 명의 결핵환자 중에서 적어도 4천명은 다제내성을 지닌 환자입니다. 그리고 북한 경제상황에 의해서 치료받은 사람들은 대부분 일반 환자들뿐입니다. 다제내성 환자 치료는 너무 비싸서 그렇습니다. 약값만 거의 100배에요. 그래서 지금 열심히 결핵퇴치 하면서도 일반 결핵 약으로 치료 안된 환자들은 치료를 못 받는 실정입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면 통계상 일반 결핵 약 보다 다제내성 약이 필요한 환자수만 늘어갑니다. 그래서 결핵 퇴치의 예산은 그만큼 더 들어가는 것이죠. 이 약은 기다릴수록 치료하기 어려운 환자들이 많아지는 세상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또 이유가 있습니다. 남북관계가 계속 경색되기 때문에 중국과 북한의 경제 상황이 협조가 상당히 많아 졌습니다. 그래서 왕래도 많아지고 중국 물품들이 북한에 많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좋은 물건들도 많이 있지만, 반면 중국에서 수준 낮은 결핵약이 들어오고 있어요. 그래서 해가 갈수록 북한 환자들이 좋지 않은 중국 약을 먹으면서 오히려 내성을 더 키우고 있습니다. 또 한가지의 이유가 있죠. 남북관계가 좋아지면 막대한 예산이 필요하죠. 지금은 예산이 있지만, 그날까지 기다리면 다른 일 급해서 전염병 투자는 하기 힘들 것입니다. 그래서 차라리 준비과정에서 투자하는 것이 훨씬 나을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만 환자 수도 줄이고 내성이 강해지기 전에 치료할 수 있고 그리고 경제적으로 여유 있을 때 중요한 통일 과업을 마무리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유진벨은어떤 일을 하고 있느냐? 남한의 관심을 북한에 돌려서 자선사업을 하는 단체입니다. 17년 결핵퇴치운동을 했습니다. 첫 10년 동안은 남한에 결핵 약을 사서 북한에 보는 일을 많이 했고요. 2007년부터 다제내성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사업에 집중을 했습니다. 지금은 북한도 사정이 좋아지고 세계 보건기구와 국제기구와 관계가 있기 때문에 일반 결핵약은 충분히 접근할 수 있는 것입니다. 등록된 환자들은 일반 결핵약을 다 먹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결핵약을 먹고 치료에 실패한 환자들이지요. 그래서 유진벨은 실패한 환자들을 집중적으로 치료하고 있는데 상당히 어려운 가운데 많이 발전했습니다. 처음 북한 당국자들도 다제내성 결핵과 결핵의 차이를 몰랐습니다. 일반 결핵 치료는 6~7개월을 하고 퇴원시킵니다. 다제내성 치료는 적어도 18개월 치료해야 합니다. 그리고 일반 결핵 치료에서는 부작용이 많지 않은데 다제내성 치료에는 부작용 관리가 엄청 중요합니다. 부작용으로 약을 다 토해내고 약을 끊을 수도 있습니다. 나머지 7년은 다제내성 치료 방법을 북한당국에 알리는 활동을 했습니다. 그래서 최근에 치료 성적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세계 평균 다제내성 환자 2명을 치료 하면 1명이 완치됩니다. 어떤 경우에는 암보다 무섭죠. 그러나 북한 의료진들이 환자치료를 잘 관리하여 유진벨은 75% 성공률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물론 북한 의료진이 잘하는 것도 있지만, 북한의 오늘현황 때문에도 그렇습니다. 북한에서는 격리치료가 다른 나라보다 훨씬 쉽습니다. 그래서 약을 먹지 않겠다고 하면서 약 거부 환자들이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북한 사람들도 사 실 약을 잘 먹습니다. 부작용도 잘참아 냅니다. 그러나 북한도 하루하루 달라지고 있죠. 앞으로 북한도 역시 다제내성 치료를 할 수 있는 적합한 환경을 제공할 수 있을 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다제내성 치료는 오늘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 유진밸이 관리하는 요양소는 극히 적습니다. 12개 요양소를 방문하면서 치료사업을 하는데 요양소들은 대부분 100~120명 안팎으로 관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공간도 좁고 환자는 너무 많습니다. 우리가 북한에 요양소 방문했을 때는 보통 25~40명의 환자를 받을 수 있지만, 가는 곳곳 마다 기다리는 환자가 더욱 많습니다. 그러나 한국인들이 관심을 주게 되면 다제내성 치료에 더욱 좋아질 것입니다. 과학적으로 치료만 하면 통일이 왔을 때 남북관계가 좋아 졌을 때 남과 북의 건강한 만남이 가능하게 됩니다. 여기에 대해서 많은 신경을 써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시청하기동계스포츠의 계절, 겨울! 동계스포츠용어 북에서는 어떻게 부를까?
시청하기안녕하세요. 이우영입니다. 북한에서 사춘기 학생들의 학교생활은 어떠할까요? 진로 결정은 한국과 어떻게 다를까요? 오늘은 교육과 진로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북한의 공교육은 원칙적으로 학교 교육과 진로가 긴밀히 연결되는 시스템입니다. 학생들이 선호하는 진로는 직업이나 활동 분야에 대한 전형적인 인식을 반영하는데요. 북한의 소학교는 한국의 초등학교에 해당합니다. 소학교는 2012년, 작년까지는 4년제였는데 지금은 5년제라고 합니다. 2000년대 소설인 숲으로 간 사람 에서는 산촌의 소학교 학생들은 갓 부임한 예쁜 처녀 선생님과 산으로 들로 견학을 다닙니다. 이에 비해 같은 2000년대 소설인 우정의 노래 에 나오는 평양 학생들은 각종 편의시설이 갖춰진 “아빠트 지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기도 하는데요. 중학생인 준혁이네 학급 38명 중 절반은 같은 “아빠트 지구” 내의 탁아소와 유치원을 함께 다닌 친구들입니다. 더군다나 북한은 입학할 때부터 졸업할 때까지 반과 담임교사가 바뀌지 않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학급생들의 친밀감이 대단하다고 합니다. 2002년이 배경인 우정의 노래 에는 구체적인 학교 상황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고등중학교의 수업이 시간당 45분에 휴식시간 15분으로 되어 있고 수업이 끝나면 “교원들은 일제히 교원실에” 모여 교원들끼리 주로 학생들과 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한국의 교무실에 해당하는 교원실 풍경은 어떻게 묘사되어 있는지 보겠습니다. 량순일은 칠판 옆의 각 학급별 출석부들을 정히 꽂아놓은 자그마한 책장과 또 그 옆의 원탁 우에 놓여 있는 빨간 색의 커다란 물통에 눈길이 멎었다. 물통은 밑굽이 다 드러날 만큼 비여 있었다. 오전 아침시간과 오후 점심녘에 하루 두 번씩 직일교원들이 꼭꼭 물을 길어다 놓은 물통이였다.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교무실 풍경과 비교해서 어떤가요? 쉬는 시간에 교사들이 마실 물을 길어다 놓는 것은 퍽 이색적이네요. 이 교원실에서 교사들은 학생 문제나 행사 등에 관한 중요한 논의를 합니다. 북한소설에도 사춘기 문제아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소설 우정의 노래 를 보겠습니다. 출판사 기자인 아버지와 구역 식료공장 회계원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장석은 어릴 땐 공부도 곧잘 하는 착한 아이였습니다. 하지만 중학시절부터 탈선을 합니다. 장석이 아파트 밑에서 또래들과 담배 피우는 것을 이웃집 여학생 옥주가 발견하는데요. 옥주가 그의 아버지에게 일러주었다가, 장석은 “볼이 터지게 귀뺨을” 얻어맞고 심한 욕설을 듣게 되죠. 장석은 “부모들의 속을 태우고 인민반의 미움을 받고 학교 선생님들의 애를 말리우면서 가까스로 중학교를 졸업합니다. 하지만 그는 상급학교는 물론 인민군대에도” 못 가게 됩니다. 학교 졸업 이후에 장석은 “어느 기계공장에 배치를 받았으나 공장에는 얼씬 얼굴도 내밀지 않고” 결국은 장석이 때문에 온 가족이 평양에서 쫓겨나고 맙니다. 북한에서는 특히나 평양에서는 가족 중 누군가의 행실이 불량하면 가족 모두가 그 지방에서 쫓겨난다고 합니다. 그리고 소설에서 묘사되었듯 상급학교나 인민군대에 갈 수 없게 되는 것이 문제아에 대한 사회적 처벌입니다. 이것은 상급학교 진학이나 인민군대 입대는 청소년들이 선망하는 사회적 진로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어쨌든 북한소설에서도 이렇게 문제아를 등장시키고 비교적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담배 피우고 폭력을 휘두르는 청소년, 그리고 탈선으로 이끄는 ‘나쁜 친구들’이 있다는 것도 북한 도시 생활과 학교현장의 또 다른 이면을 추측할 수 있도록 합니다. 진로는 대개 이 중학 졸업 이후 결정됩니다. 소설에서 현심은 원래 의사가 되고 싶은 생각이 없었으나 어머니의 소원으로 의대에 진학한 경우입니다. 의사가 되고자 의학대학 통신생으로 공부하던 어머니가 아버지와 결혼하는 바람에 의사의 꿈을 접어야 했던 사연 때문이죠. 이처럼 북한의 진로 결정도 한국의 청소년들처럼 부모의 뜻을 반영해 정해지는 정서가 있는 것이 비슷한 것 같습니다. 현심이 의대에 간 것은 간호원이었던 어머니의 못 다 이룬 꿈에 대한 아쉬움 때문으로 설정되는데, 이런 경우는 한국에서도 아직 흔히 볼 수 있으니까요. 도시에서 넉넉히 살 형편이 되더라도 자식을 편하고 곱게 키우기 보다 일부러라도 험한 지역에서의 삶을 체험케 하는 것이 바람직한 가정교육으로 제시되기도 합니다. 평양에 살다가 탄광촌으로 가게 되자 심하게 방황하던 남철은 훗날 그 이사에 어머니의 깊은 뜻이 있었음을 깨닫고 친구에게 편지를 씁니다. 사실 우린 여기로 이사는 오지 않아두 됐었대. 그런 걸 우리 어머니가 결심을 했다는구나. 나 때문에... 사실 나야 외아들로서 고생이란 모르고 자라지 않았니. 그래서 어머니가 모질게 마음을 먹었는데 난 그것두 모르구... 2000년대 이후 소설들에서는 고생 모르고 자란 이들에게 일부러 열악한 환경을 제공해서라도 강하게 키워야 한다는 메시지가 교육적인 모범으로서 노골적으로 제시됩니다. 이렇게 자란 아이는 소설에서 자주 칭송받는 돌격대원이 될 자질을 기르게 되는 것이기도 하지요. 도시에서 편하게 지내며 말썽 피우다가 온 가족이 평양 밖으로 소개된 장석이네 경우와 대조적으로 말이지요. 북한 소설에서 아이들의 교육과 진로는 전반적으로 국가의 모범적인 노동력 생산을 목표로 한 계몽적인 메시지로 집중됩니다. 그러나 세부 내용에서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공교육 체계가 중심이 되어 이루어지며 최근 소설에서는 도농간의 교육 환경 차이, 청소년 탈선 문제, 입시 경쟁, 가정 교육에 대한 중요성 등에 대한 이슈가 포착됩니다. 미시적인 문제의식의 차원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기도 합니다. 감사합니다.
시청하기안녕하십니까? 이번에는 북한의 전자음악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1983년 7월에 북한 최초의 경음악단인 왕재산경음악단이 결성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1985년 6월에 만수대예술단의 전자음악연주단을 독립하여 보천보전자악단을 만들었습니다. 혜성처럼 등장한 전자음악단은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습니다. 북한에서 본격적으로 전자음악이 대중가요의 한 영역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보천보전자악단이 높은 인기를 누리게 된것은 서구의 전자음악과는 다른 조선식 전자음악을 활용하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1991년에 있었던 보천보전자악단의 일본 공연에 대한 평가에서도 이러한 평가가 확인됩니다. 일본 청중들에게 북한의 전자음악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였고 현대음악에 투영된 민족정신을 뿌리 깊게 심어 놓았다고 북한은 평가하고 있습니다. 현대음악에 투영된 민족정신이란 곧 북한이 주장하는 ‘조선식 전자음악’을 말합니다. 조선식 전자음악이란 한 마디로 ‘반인민적이며 퇴폐적인’ 서구 전자음악과 달리 조선장단을 활용한 전자음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자음악에 국악장단을 적절하게 활용한 것입니다. 조선식 전자음악의 특색은 연주곡에서 두드러집니다. 전자악기로 연주되는 아리랑 을 비롯하여 옹헤야 , 조선팔경가 , 수령님 은덕일세 등도 전통악기와 신디사이저 같은 서양악기가 어우러져 새로운 음악을 만들었습니다. 북한의 전자음악은 1990년대 중반 이후 한동안 활동이 뜸해졌습니다. 북한의 전자음악이 다시 관심을 끈 것은 김정은의 등장과 연관이 됩니다. 모란봉악단이 등장한 것입니다. 모란봉악단은 김정은의 직접 지시로 결성된 악단입니다. 조선중앙방송 보도에 따르면 “모란봉악단의 명성은 김정은 국방위원장의 각별한 관심과 지도에 따른 것이라고 하면서 그가 악단 이름을 직접 짓고 시연회와 공연을 수십 차례 직접 지도했다”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2012년 7월 시범공연을 가진 이후 최근까지 북한에서 가장 중요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기념일에는 반드시 공연이 이루어졌습니다. 7.27전승절, 로동당창건 기념일, 김일성 군사대학설립기념일, 김정은의 군대 현지지도에 있어 화선공연, 광명성 3호 발사 성공 축하 기념, 2013년 신년축하공연 등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공연의 대부분은 조선중앙방송을 통해 녹화실황으로 수차례 중계가 이뤄졌고 모란봉악단이 부른 노래는 주요 북한 방송의 배경음악으로 자주 등장하고 있습니다. 화려한 조명, 현대적 전자악기, 단원들의 패션과 헤어스타일은 기존의 북한 공연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시범공연 때는 화려한 무대배경과 레이저 조명으로 현란한 공연장면을 연출하였고, 북한 당국이 ‘원수의 나라’로 선전하는 미국 영화 록키 를 배경으로 활용하고, 자본주의의 상징인 미키마우스 캐릭터까지 등장시켰습니다. 북한이라고 상상하기 어려운 파격적인 연출이었습니다. 북한 언론에서는 모란봉악단에 대해서 “우리 당의 음악 정치를 맨 앞장에서 받들어가는 모란봉악단이야말로 사회주의강성국가건설의 최후승리를 위한 대진군을 힘있게 선도해나가는 제일나팔수이다.”고 평가합니다. 김정은의 직접 지시로 결성된 모란봉악단은 음악정치로 표현될 만큼 분명한 정책적 의도를 담고 있습니다. 모란봉악단에서 이처럼 놀라운 ‘파격’을 연출한 것은 새로운 지도자 김정은 시대의 변화에 대한 의지를 인민들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김정은 체제에서는 ‘이제는 달라질 것’, 젊은 지도자가 나왔으니 ‘새로운 사회가 될 것’이라는 것을 인민들에게 실감나게 과감하게 보여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북한의 변화가 보다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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